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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리

수지김 피살사건 간첩 조작 사건 총정리(+남편 윤태식 근황, 김수현, 김포공항, 장세동)

by 살구네 2020.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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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수지 김 피살사건을 조명해 네티즌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수지김 파살사건 또는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 오늘은 수지김 피살사건에 대해서 총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1. 수지김 피살사건

수지김 피살사건은 윤태식(1958~)이 부인 수지 김(본명 김옥분)을 살해한 후 간첩으로 누명을 씌운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특히 유명한 이유는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국가기관이 범죄자가 면피를 위해 짠 시나리오를 정권의 필요에 따라 적극 이용하여 무고한 피해자를 간첩으로 몰고 유족들의 삶까지 파괴한 초유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2. 수지김 피살사건 전개 과정

사건의 시작은 일반적인 살인 사건이었다. 1987년 1월 돈을 벌기 위해 홍콩으로 나간 윤태식(尹泰植)은 사업자금 문제로 아내 김옥분(金玉分)과 말다툼을 하다가 흥분해 김옥분을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피해자는 충북 충주에서 1남 6녀의 가난한 농촌 집안에서 둘째 딸로 태어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서울의 공장을 거쳐 미8군 술집, 일본인 대상 유흥 접객원 등의 거친 일을 하다가 홍콩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영국령 홍콩으로 이민을 갔다. 하지만 곧 이혼하고 또 다른 홍콩 남자를 만났지만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다 만난 사람이 윤태식이었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 온 삶이라 겉이 번지르르한 젊은 남자가 감언이설로 다가서자, 고마운 마음에 덜컥 결혼한 것이 화근이었다. 6세 연하인 윤태식은 자격지심 때문인지 하루가 멀다 하고 폭력을 휘둘렀고, 결국 채 몇 달도 함께 살지 않은 1987년 1월 3일 아내를 살해하고 말았던 것이다.


후일이 두려워진 윤태식은 싱가포르로 날아가 북한 대사관에 망명(월북)을 신청했다. 당연히 북한 대사관은 윤태식을 쫓아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미국 대사관이었는데 당연히 여기서도 쫓겨났고 미국 대사관은 한국 대사관에 연락해 '야 이상한 놈 왔다 갔어'라며 귀띔을 해준다. 

결국 윤태식은 싱가포르 한국 대사관으로 끌려왔는데 이 때 살인 혐의를 피하기 위해 아내가 간첩이었다는 시나리오를 지어낸다. 

왜냐하면 국가보안법 제21조 3항에는 이 법의 죄를 범한 자를 체포할 때 반항 또는 교전상태하에서 부득이한 사유로 살해하거나 자살하게 한 경우에는 체포한 경우에 준하여 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 즉, 간첩은 죽여도 된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Dead or Alive성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즉, 원칙적으로는 생포해야 하지만 죽여놓고 반항 또는 교전상태였다고 둘러대면 그만인 것. 윤태식은 첩보영화 광이었고 시나리오도 그 첩보영화들을 보고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 시나리오는 "사실 아내는 '수지 김'이라는 북한의 간첩으로, 빚쟁이들에게 잡혀 있다며 싱가포르로 자신을 불러내 북한 대사관으로 끌고 와 납치하려 했고 자신은 탈출했다"는 것이다. '수지 김'이라는 가명을 실제로 쓰긴 했으나, 이건 김옥분이 해외 이곳저곳을 왔다갔다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썼던 가명일 뿐이다. 추가로 정확히는 오라고 해서 가봤더니 웬 여자가 나와서 마누라 만나고 싶으면 북한 가야 된다고 했단다.

 

당연히 한국 정부는 이 말을 믿지 않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국은 전두환 정권 타도로 시끄러웠던 1987년도였고 대한민국 제5공화국 정권은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쏠리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윤태식의 시나리오를 이용하기로 하고 즉, 사건의 진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살인+자진 월북(시도)' 사건을 '납북' 사건으로 조작하였던 것이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 장세동의 지휘 아래 사건 조작이 전개되었다. 그렇게 '반공, 반공' 하면서, 정작 진짜 월북하려던 인간은 봐주고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간첩으로 만드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것이다.


윤태식은 안기부 해외 공작원들로부터 입국 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철저히 교육받았으며, 실제 입국 할 때의 보도 자료를 보면 기자들의 질문에 "이제야 서울에 온 것 같습니다."라고 울먹이는 어조로 답하고, 심정을 묻자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너무 무서워가지고요 말을 못하겠어요."라는 말을 했다.


이 때, 물론 홍콩에서는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있었다. 시체를 침대 밑에 숨겼는데 당연히 부패되어 냄새가 났고 옆집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하여 시체를 발견했다. 

외부의 침입 흔적이나 부부 외 제3자의 족적이나 지문, 모발 등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고, 집안에서도, 피해자 부부의 행적과 지인에 관한 수사에서도 북한이나 정치, 사상 등과 관련된 그 어떤 자료나 문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대공사범(국가안보 관련 사범)'이라는 핑계로 홍콩 경찰의 정당한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인다.


한편, 윤태식이 스스로 월북하려던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그 역시 곧바로 대공분실로 끌려가 몽둥이 찜질을 당하며, 결국 모든 사건의 전모와 함께 북한으로 망명하려 했다는 것까지 실토한다. 이 사건을 다룬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윤태식을 직접 패던 안기부 직원이 "이 새끼 이거 완전 개구만?"라고 비아냥거리는 장면으로 나온다. 원래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윤태식을 감옥에 보내야 맞겠지만, 그러면 이상하게 비추어질테니 그냥 출국만 막고 방치한다.


피해자 김옥분은 억울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서 미인계를 쓴 희대의 여간첩이라고 왜곡 선전되었고 언론들은 안기부의 지시대로 온갖 소설을 휘갈겨댔다. 

한국 언론은 ‘여간첩 수지 김’ 이야기를 연일 대서특필했다. 심지어, 당시 방영 중이던 KBS 드라마 <남십자성>은 중간에 ‘수지 김’이라는 여간첩 배역을 만들어 투입하기까지 했다. 물론, 진실이 밝혀진 홍콩에서는 ‘수지 김은 간첩이 아니며, 윤태식에 대한 납치 흔적은 없다’라는 보도가 계속 나왔지만, 인터넷이 없던 시대라서 한국에는 이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온 가정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간첩의 가족이라며 연좌제로 세상의 멸시를 당했고, 실제로 안기부에 연행되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여기에서 강도 높은 조사는 강제연행 및 고문, 각종 인권침해를 뜻한다. '간첩의 가족'이기 때문에 보안감찰이라는 명목으로 안기부의 감시가 일상화되었으며, 직장과 학교에 틈만 나면 연락을 취해 행적을 캐물으며 민폐를 끼쳤고, 당연히 그들이 매사에 눈총을 받게 만들었다. 당연히 유가족들은 일상 생활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해져 직업을 가지기 어려웠고 결혼 생활도, 학교에 다니기도 힘들었으며 신분을 숨기고 연락을 끊어야 했다. 어머니는 이로 인해 실어증을 얻어 1997년에 사망했고 나머지 형제자매 5명도 고초를 겪었다.


KT&G에 다니던 큰언니는 사건 후에 해고된 뒤, 정신질환자가 된 끝에 그해 겨울에 타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큰언니의 남편도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1988년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받고 폐인이 되었다.

오빠도 주위의 비인간적 멸시 속에 술에 의지하다 2000년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사건 은폐를 위한 의도적인 암살이었다. 목격자에 따르면 대형 트럭이 2번이나 후진하면서 깔아뭉갰다고 한다. 윤태식을 형사고발한 지 4개월 만의 일이었다.


여동생 4명 중 3명은 이혼당했고, 그 자녀들도 간첩의 가족이라며 집단괴롭힘을 당해 자퇴하고 가출, 방황했다. 국가안전기획부와 윤태식은 아내를 죽인 것도 모자라서 그녀의 가족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고, 가까운 친척마저 지옥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3. 수지김 피살사건 사건 이후

3.1 수지김 피살사건 윤태식의 활동과 윤태식 게이트의 서막

이후에 안기부 직원들과 친분을 맺었는지 윤태식을 감시만 했고 윤태식은 수지김의 죽음과 관련해 구속조치 같은 건 받지도 않은 채, 사기 행각을 일삼다 형사 처벌을 받으면서도 안기부의 묵인과 도움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 하면서 살고 있었다.


윤태식은 자금을 마련해 영화 배급 사업에 손을 댔다가 쫄딱 망한 뒤, 본인 회사의 직원들이나 주변 여자들을 통해 얻은 회사원 20명 등의 신분증, 재직증명서를 위조해 신용카드 수십장을 발급받아 5개월 동안 수억원을 사용해오다 94년부터 2년6개월간 복역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밖에도 중국산 위폐개수기를 자신이 개발한 것처럼 속여 금융기관에 납품될 제품의 공급권을 주겠다며 돈을 빌려 가로채거나 중국 푸동지구에 건설 사업을 따게 해주겠다고 했다가 흐지부지되어 사기 혐의를 받는 등 사기 행각을 지속해왔다. 적발되어도 다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며 재기했다. 


96년 7월 출소한 윤태식은 교도소 수감 시절 알게된 교도소 동료로부터 지문인식 관련 사업을 하는 회사를 소개받아 동업을 하게 된다. 또한 윤태식은 이 동료로부터 모 언론사 사장 부부를 소개받아 이들을 끌어들여 이전 동업자와 결별하고 98년 새롭게 ‘패스21’이라는 벤처 기업을 만든다.

패스21의 초기 자본은 이들 부부 중 웨딩,가구 관련 사업을 하던 부인이 대부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의 두 아들 역시 패스21의 감사와 이사를 지내는 등 이들은 패스21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또한 윤태식은 교도소 동료로부터 역시 김모 전 국회의원을 소개받았으며 김 전 의원을 통해 정관계 로비를 진행한다.


오랜 기자 생활로 정관계에 발이 넒었으며 언론사 사장이던 김모 사장과 전 국회의원의 비호를 통해 윤태식의 패스21은 재경부 장관을 지낸 인사를 대표이사로 영입하기도 했으며, 정통부 장관은 물론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기술 설명을 하는 등 승승장구한다. 이러한 로비와 더불어 90년대 후반 불어닥쳤던 벤처 열풍으로 인해 패스21의 장외 주식은 15만원에서 30만원 사이를 오르내리며 윤태식은 장부상 수백억 원 대의 부자가 된다.

심지어 김모 사장이 고교동창인 이종찬 당시 국정원장에게 부탁해 윤태식은 국정원 내에서 기술시연회를 열기도 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윤태식은 주목받는 사업가로 아침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3.2 수지김 피살사건 의혹 제기와 제조사(장세동)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라고, 아무리 봐도 내세울 게 없던 윤태식이 갑작스럽게 벤처 사업가로 잘 나가는 것을 보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2000년 주간동아에서 이정훈 기자가 처음으로 이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6] 또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이를 자세히 취재하여 방송했다.

수지 김의 유족들은 간첩 누명 자체는 정권 차원에서 조작된 거니 당장 어찌할 수 없다고 쳐도, 최소한 윤태식의 살인행위만큼은 사전에 알고 있었으니 감옥으로 보내졌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방송 등을 통해 윤태식이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유족들이 분노해 검찰에 수사 요청을 하지만 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인 전해철이 유족들의 법률대리인을 맡아 노력한 끝에 그 과정에 안기부의 압력과 방해 공작이 있다는 의혹 등 모든 진실이 결국 까발려지게 된다.


이 때 국정원과 윤태식, 그리고 정치권의 커넥션이 폭로되었다. 국정원은 윤태식을 철저하게 입단속시켰으며 1991년부터 윤태식의 출국을 금지하고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었고, 윤태식도 이를 이용해 잘 먹고 잘 살았을 뿐 아니라 벤처열풍을 틈 타 패스21 주식을 여러 국회의원들, 그리고 언론 각계 인사들에게 뿌려대며 로비를 하고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서벤처 3대 게이트에 번외로 들어가기도 하는 '윤태식 게이트'라는 헬게이트를 소환한다. 이 때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다.


이후 공소시효 만료를 50일 남겨두고 간신히 윤태식을 구속한 검찰은 홍콩 경찰들에게서 받은수사자료를 토대로 윤태식이 살인범이자 사기꾼이며 여기에 국가 기관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밝혀낸다.

그러나 이 사건에 관여한 공직자들은 한 집안 사람들 모두의 인생을 망쳐놓고도 공소시효가 매우 짧은 현행법 때문에 처벌은커녕 재판조차 받지 않았고 분노한 유족들은 국가와 윤태식, 그리고 장세동을 비롯한 과거 국정원 고위관계자들에게 손해배상소송을 걸었다.


법원은 죄질이 너무 나쁜 데다 반성도 안 하고 있으니 중형을 받아 마땅하다며 윤태식에게 살인죄로 12년. 기타 비리로 징역 3년 6개월 등 징역 15년 6개월을 선고했으며 국가가 유족들에게 42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이 배상금 액수는 당시 정부가 배상한 손해배상 사건 중에서 유례가 드물 정도로 큰 금액이다.

그리고 국가도 장세동을 비롯한 안기부 간부들과 윤태식에게 구상권을 행사했고 결국 대법원은 장세동에게 9억, 윤태식에게 4억 5천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윤태식의 재산은 이미 공중분해되었고, 장세동은 이미 시가 8억원대의 빌라를 처분하는 등 재산을 빼돌린 뒤였다.

현재까지도 아직 남은 구상금 6억여원을 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수지 김 사건은 단순한 실수’라는 등 반성보다는 합리화하기에 바쁘다. 장세동 재산, 없나? 숨겼나? 물론 이 돈을 다 받았다 해도 유족들이 그동안 받아온 모욕과 고통이 위로될 리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

 

4. 수지김 피살사건 윤태식 출소, 그 후

윤태식의 최종 형량은 15년 6개월로, 2001년 10월 구속기소 이후 2017년 4월 27일 만기출소했다. 출소 후 Yoonam(윤엠)/ 이라는 보안 업체를 설립했다. 윤엠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보안, 인증 관련 사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출소 후 그는 파이낸셜데일리와 월간조선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 인터뷰들에서 윤태식은 수지김 사건 이전 홍콩에서 영화 비디오 판권 장사를 통해 약 50억 원을 벌어들였다거나 ,패스21 창업에서 언론사 사장 부부는 오히려 자신의 덕을 본 것이라는 다소 믿기 어려운 주장을 했다. 또한 윤태식은 본인이 수감생활 중 출원을 진행한 “휴대폰 실시간 공유보안 관리시스템” 특허를 통해 훔쳐갈 수 없는 전자화폐를 만들었다며 관련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최근 윤태식은 ‘해킹과 도용의 위험에서 해방될 수 있는 실시간 본인 인증 수단으로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전혀 필요 없는 편리함과 보안까지 해결한 세계 유일의 본인 인증 기술’을 개발하였다며 보안 사업을 진행 중이다. 


윤엠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아직 뚜렷한 실체를 보이지 못한 기업과 기술을 두고 일부 1~2개 언론만 윤엠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유니콘 보안", "세계적 신기술"이라고 부르고 있는걸 발견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 윤엠의 분명한 사업적인 성과나 기술의 실체를 확인하기는 어렵고 ,대부분의 기사 내용은 다른 기업과 MOU를 맺었다거나, 개발에 "착수"했다는 내용이다. 기업 간의 MOU(양해각서)는 통상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려우며, 흐지부지 무산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다시 말해 MOU만으로 해당 회사가 가치나 역량을 증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윤엠은 아직 기술/제품을 상용화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윤태식의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 프로토 타입만 있고 내년 상반기 필드테스트를 거친 후 순차적으로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결국 윤엠의 사업적 역량과 기술의 가치는 아직 시장에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윤엠의 재무 지표는 위에서 확인이 가능한데 2019년 기준 자본금 4억 원, 매출액 1억 6,468만원, 영업 손실 882만 원, 당기 순이익 363만 원으로 규모있는 R&D가 진행되고 있다고 추정하기는 어렵다. (연구비는 통상 비용으로 인식하며, 개발비는 회계 상 무형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으나 조건이 상당히 엄격하다.)


이처럼 일부 언론은 뚜렷한 근거나 검증없이 윤엠을 (윤태식이 주장하는 그대로) "혁신적인 암호 체계 기술을 가진 대단한 기업"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언론 기사만을 근거로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것은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언론 기사들이 전형적인 기업 가치 부풀리기를 위한 광고 기사인지 아니면 윤엠이 정말로 대단한 기술력과 가능성을 지닌 보안 기업일지는 이 글을 읽는 각자가 판단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다만 윤태식과 윤엠의 행보를 보면 정확한 기술력을 검증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특허 출원에 유독 신경을 쓰고 정계 로비와 언론 홍보를 통해 펀딩 유치와 주가 상승을 노렸던 패스 21의 잔상이 느껴지는 데 이게 정말 우연이기만 할까?

5. 결론, 수지김 피살사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SBS에서 2020년 9월 첫 정식방송을 하는 교양 프로그램의 에피소드로 다루어졌다. 해당 프로그램은 스토리텔러들이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어서, 이 사건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사건을 전체적으로 자세하게 이야기해주고 있으며, 국가 권력이 한 개인과 가족에게 얼마나 쓰레기 같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는지, 그로 인해 한 개인의 명예와 가족이 얼마나 처참하게 몰살당했는지, 또한 가해자들은 법적책임도 지지 않고 일말의 반성과 사과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것이 알고싶다의 영상자료, 비밀 전문의 문서자료, 유족의 인터뷰와 영상자료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해당 방송에서는 윤태식의 이름이 윤씨로 방송되었으며,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다. 또한, 수지김이 어떠한 인생을 살았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사건을 정리하면서 보니... 참 분통이 터지는 사건입니다.

쉽게 정리하자면 저 여자분 유족들은 멀쩡하게 기른 딸 살해당한것도 모자라서 빨갱이 가족이라고 비난받았고, 안기부 연행되어 고문받고 보안감찰 명목 하에 계속 감시받았습니다.

피해여성 어머님은 충격에 실어증이 걸려 사망하셨고, 형제자매 5명도 직장에 계속 안기부의 감시전화가 걸려오는 등 일상생활을 방해받아 정상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큰언니는 해고당한 뒤 정신병을 얻어 타지에서 사망하셨고 큰언니의 남편도 알콜중독에 걸린 뒤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받아 폐인이 되었습니다. 오빠는 의도적인 살해로 의심되는 사고를 당했는데, 윤씨를 형사고발하고 4개월 뒤에 대형트럭이 일부러 후진을 두어번 반복하며 깔아뭉개 결국 사망하였습니다. 아내를 죽이고 처가 식구들을 모두 몰살한 셈인 윤씨나, 알고도 멀쩡한 집안 간첩 빨갱이로 만들어 살인자를 비호해주고 정치놀음에 가정을 파괴시킨 안기부나......지옥도 안 받아줄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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